서론
카이로 근처 기자에서 피라미드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압도당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수없이 봤던 건데도 실제로 보니까 차원이 달랐다. 높이가 146미터나 되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사막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정말 경이로웠다. "45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특히 해질 무렵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피라미드는 정말 장관이었다. 마치 고대 파라오들이 지금도 그 안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파라오의 영생에 대한 믿음
피라미드를 이해하려면 먼저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죽음 후에도 영혼이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다. 특히 파라오는 신의 아들이라서 죽어서도 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라오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고, 사후 세계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무덤을 화려하게 꾸몄다.
피라미드는 바로 그런 믿음의 결정체였다.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파라오가 사후 세계로 가는 출발점이자, 영원히 머물 궁전이었다. 그래서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 지었던 것이다. 온 나라의 힘을 모아서 한 사람의 무덤을 만든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피라미드 내부에는 파라오가 사후 세계에서 필요할 모든 것들을 넣었다. 금, 보석, 음식, 옷, 심지어 하인들까지. 파라오가 죽어서도 현세와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지금 보면 좀 비현실적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진지하게 믿었던 일이다.
기자의 세 대 피라미드
기자에는 세 개의 큰 피라미드가 있다. 가장 큰 쿠푸 피라미드, 중간 크기의 카프라 피라미드, 그리고 가장 작은 멘카우라 피라미드다. 모두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2181년) 4왕조 때 지어진 것들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차례로 지은 가족 무덤인 셈이다.
쿠푸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한데, '대피라미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높이가 146.5미터였는데 지금은 꼭대기가 없어져서 138미터 정도다. 밑변 한 변의 길이가 230미터니까 정말 거대하다. 축구장을 두 개 합친 것보다 크다.
카프라 피라미드는 두 번째로 크지만, 높은 곳에 지어져서 더 커 보인다. 꼭대기에 석회암 덮개가 일부 남아있어서 원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멘카우라 피라미드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래도 높이가 65미터나 된다. 요즘 아파트로 치면 20층 정도다.
230만 개 돌로 쌓은 기적
쿠푸 피라미드는 약 230만 개의 석회암 블록으로 만들어졌다. 평균 무게가 2.5톤이니까 총 무게가 650만 톤 정도다. 어떻게 이런 무거운 돌들을 4500년 전에 정확하게 쌓았을까? 지금도 크레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돌들의 정밀도도 놀랍다. 돌과 돌 사이 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맞춰져 있다. 칼날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현대 기술로도 이 정도 정밀도를 내기는 쉽지 않다. 4500년 전 기술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
내부 구조도 복잡하다. 왕의 방, 여왕의 방, 지하 방이 있고, 각각을 연결하는 통로들이 있다. 또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한 빈 공간들도 여러 개 있다. 건축학적으로 정말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다. 단순히 돌만 쌓은 게 아니라 복잡한 건축물이었던 셈이다.
건설 과정의 수수께끼
피라미드가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확실한 건 없다. 가장 유력한 설은 경사로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나선형 경사로를 만들어서 돌들을 위로 끌어올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많다. 그런 거대한 경사로를 만들려면 피라미드보다 더 많은 돌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피라미드 주변에서 그런 경사로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에는 내부 경사로 설이 주목받고 있다. 피라미드 내부에 나선형 통로를 만들어서 돌을 운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피라미드에서 내부 경사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추측일 뿐이다.
수만 명이 참여한 거대 프로젝트
피라미드 건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헤로도토스는 10만 명이 20년간 일했다고 기록했지만, 현대 연구로는 2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래도 엄청난 규모다. 온 나라가 피라미드 건설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노예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연구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노동자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골을 분석해보니 영양상태가 꽤 좋았다고 한다. 또 의료 혜택도 받았던 흔적이 있다. 강제 노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공근로 사업이었을 수도 있다.
나일강 범람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까 그때 농민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을 것이다. 일당도 받고, 3끼 식사도 제공받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업 해결책이기도 했던 셈이다.
도굴꾼들과의 4000년 전쟁
피라미드의 가장 큰 문제는 도굴이었다. 워낙 많은 보물이 들어있다 보니까 고대부터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파라오들도 이를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쿠푸 피라미드 내부에는 여러 개의 가짜 통로와 함정이 있다. 도굴꾼들을 헷갈리게 하려는 장치들이었다. 또 입구를 완전히 막아서 찾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도굴꾼들은 결국 다른 곳에 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9세기경 아랍의 칼리프 알 마문이 쿠푸 피라미드에 구멍을 뚫고 들어갔는데, 이미 텅 비어있었다고 한다. 그보다 훨씬 전에 도굴당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들어가는 입구도 그때 만든 구멍이다. 원래 입구는 따로 있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피라미드 근처에는 스핑크스도 있다. 사람 머리에 사자 몸을 한 거대한 조각상인데, 길이가 73미터, 높이가 20미터나 된다. 하나의 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스핑크스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논란이다. 보통 카프라 피라미드와 비슷한 시기로 보는데, 일부에서는 훨씬 오래되었다고 주장한다. 몸체의 침식 패턴을 보면 물에 의한 침식 흔적이 있는데, 이는 사막 기후가 되기 전인 1만 년 전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스핑크스의 코가 없어진 이유도 여러 설이 있다. 나폴레옹 군대가 대포로 쐈다는 설, 이슬람 광신도들이 우상 파괴를 위해 부쉈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른다. 어쨌든 코 없는 모습이 더 신비로워 보이는 것 같다.
현대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21세기인 지금도 피라미드에는 많은 미스터리가 남아있다. 최근 우주선 입자를 이용한 투시 기술로 쿠푸 피라미드 내부를 조사했는데, 알려지지 않은 빈 공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방향도 신기하다. 북쪽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데, 오차가 3분의 1도밖에 안 된다. 현대 나침반보다 정확하다. 45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정확도를 낼 수 있었을까? 별을 이용해서 방향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황금비율도 발견된다. 피라미드의 높이와 밑변의 비율이 황금비에 가깝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미 황금비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관광지가 된 현재의 피라미드
지금 피라미드는 이집트 최고의 관광지다.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입장료가 꽤 비쌌다. 쿠푸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려면 별도 요금을 내야 하는데,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해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정말 신기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왕의 방이 나온다. 그 안에는 빈 석관만 덩그러니 있었다. 미라와 부장품들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 하지만 그 공간에 서 있으니까 뭔가 숭엄한 기분이 들었다.
밤에는 음향과 조명 쇼도 한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조명을 비추면서 고대 이집트 역사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좀 상업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볼 만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보존과 관리의 어려움
피라미드 보존이 쉽지 않다. 4500년 된 건물이니까 당연히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대기오염과 산성비가 문제다. 카이로의 스모그가 피라미드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관광객들도 문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피라미드 내부가 손상되고 있다. 사람들이 내쉬는 습기와 이산화탄소가 석회암을 부식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집트 정부는 피라미드 주변 환경 개선에도 신경 쓰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전기 버스를 도입했고, 주변 상점들도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 수입도 중요하니까 균형을 찾기가 어렵다.
인류 문명사에서의 의미
피라미드는 단순한 고대 건축물이 아니다. 인류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기술력, 조직력, 경제력이 모두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또 피라미드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영생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을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4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다. 피라미드 건설을 통해 발전한 기술들이 이후 고대 이집트 문명 전체에 영향을 줬다. 또 그리스, 로마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고, 결국 서양 건축 전체의 뿌리가 되었다.
피라미드 앞에 서 있으면 인간의 위대함과 동시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파라오들도 영생을 꿈꿨지만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피라미드만이 그들의 꿈을 증언하며 4500년을 버텨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