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상파울루에서 파울리스타 거리를 처음 걸었을 때 정말 압도당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대로 양쪽으로 마천루들이 빽빽하게 서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브라질에 이런 곳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여유로운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는 정말 브라질의 맨해튼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까 브라질만의 독특한 에너지가 있었다. 길거리 예술가들의 공연과 노점상들, 그리고 브라질 특유의 활기가 넘쳤다.
커피 부자들이 만든 꿈의 대로
파울리스타 거리의 역사는 18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브라질은 커피 수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는데, 특히 상파울루 주의 커피 농장주들이 정말 부자였다. 이들을 '커피 바론'이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커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살 만한 고급 주거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파울루 구시가지는 너무 붐비고 지저분했다. 그래서 우루과이계 기업가 호아킹 에우제니우 드 리마가 새로운 고급 주거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모델로 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정말 호화로운 저택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였다고 한다. 커피 부자들이 앞다투어 웅장한 맨션을 지었다. 프랑스 건축가들을 불러와서 유럽풍 건물을 짓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정말 파리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20세기 초 상파울루의 샹젤리제
1900년대 초 파울리스타 거리는 정말 화려한 곳이었다. 브라질 최고 부자들이 모여 사는 거리였으니까 당연했다. 거리 중간중간에 카페와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상파울루 상류층의 사교장이 되었다.
1차 대전 후에는 더욱 발전했다. 유럽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거리가 더 국제적이 되었다. 이탈리아, 독일,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문화를 가져왔다. 지금도 상파울루에 일본인 거리가 있는 것도 그 영향이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커피 가격이 폭락하면서 커피 바론들의 부가 줄어들었다. 또 상파울루가 공업도시로 변하면서 상업 지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파울리스타 거리도 주거지에서 상업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천루의 숲으로 변신
1940년대부터 파울리스타 거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 저택들이 하나둘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브라질 경제가 성장하면서 은행과 기업들이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1960-70년대에는 정말 건설 붐이었다. 브라질이 '경제의 기적'을 이루던 시기였는데, 그 상징이 바로 파울리스타 거리였다. 30층, 40층짜리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마천루 풍경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1990년대에는 코핀 빌딩 같은 초고층 건물들도 생겼다. 38층 높이인데, 당시로서는 정말 높은 건물이었다. 지금도 파울리스타 거리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건물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상파울루 전경이 정말 장관이라고 한다.
브라질 경제의 월스트리트
지금 파울리스타 거리는 브라질 경제의 심장부다. 브라질 최대 은행들인 이타우, 브라데스코 본사가 이곳에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브라질 지사도 대부분 파울리스타 거리에 있다. 정말 브라질의 월스트리트 같은 곳이다.
상파울루 증권거래소도 근처에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증권거래소 중 하나인데, 브라질 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나오는 경제 뉴스가 브라질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일 낮에 가보면 정말 바쁜 분위기다. 정장 입은 비즈니스맨들이 정신없이 걸어다니고, 카페들은 회의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국의 강남이나 미국의 맨해튼과 비슷한 느낌이다. 돈의 냄새가 진동한다는 표현이 딱 맞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파울리스타 거리는 경제만의 거리가 아니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이 대표적인 문화 시설이다. 1968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학적으로도 유명한데, 거대한 유리 상자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구조다.
MASP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서양 미술 컬렉션이 있다.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브라질 현대 미술 작품들도 많다. 입장료가 좀 비싸긴 하지만 볼 만하다.
일본문화회관도 있다. 상파울루에는 일본계 브라질인이 정말 많은데, 그들의 문화 센터 역할을 한다. 일본 영화 상영이나 전통 공연도 자주 열린다. 파울리스타 거리의 국제적 성격을 보여주는 곳이다.
주말이면 보행자 천국
평일에는 차들로 북적이는 파울리스타 거리가 주말에는 완전히 달라진다. 일요일마다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보행자들에게 거리를 개방한다. 이때 파울리스타 거리는 정말 축제 분위기가 된다.
길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곳곳에서 열린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타면서 거리를 즐긴다. 가족들이 나와서 피크닉을 하기도 하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평일의 삭막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다.
노점상들도 많이 나온다. 브라질 전통 음식부터 수공예품까지 온갖 것들을 판다. 아사이 주스나 파스텔 같은 브라질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다.
상파울루 시민들의 자부심
상파울루 사람들에게 파울리스타 거리는 정말 특별한 곳이다. 자신들의 도시가 브라질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의 상징이다. "우리는 리우와 달라"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 차이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파울리스타 거리다.
실제로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는 정말 다르다. 리우는 관광과 문화의 도시라면, 상파울루는 경제와 비즈니스의 도시다. 파울리스타 거리를 걸어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여기는 일하는 도시의 에너지가 넘친다.
상파울루 사람들은 자신들이 브라질의 '뉴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럴 만하다. 브라질 GDP의 절반 이상이 상파울루에서 나온다고 하니까. 파울리스타 거리는 그런 경제력의 상징인 셈이다.
글로벌 도시로의 발전
21세기 들어 파울리스타 거리는 더욱 국제적이 되었다. 다국적 기업들의 브라질 본사들이 계속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도 파울리스타 거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스타트업들도 많다. 브라질이 라틴아메리카 IT 허브로 떠오르면서 젊은 기업가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코워킹 스페이스들도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딱딱한 금융 거리에서 좀 더 역동적인 곳으로 변하고 있다.
건축물들도 현대적으로 바뀌고 있다. 친환경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고, 디자인도 더 세련되어지고 있다. 옛날 투박한 콘크리트 건물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상파울루가 글로벌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브라질의 다양성이 만나는 곳
파울리스타 거리를 걸어보면 브라질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아프리카계, 유럽계, 일본계, 아랍계 등등 정말 다양하다. 이런 다양성이 상파울루의 활력의 원천인 것 같다.
음식도 다양하다. 브라질 전통 음식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일본, 아랍, 유대 요리까지 먹을 수 있다. 특히 일본 음식은 정말 수준이 높다. 상파울루에 일본계 인구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종교도 다양하다. 가톨릭 교회, 개신교 교회, 유대교 회당, 불교 사원 등이 공존하고 있다. 파울리스타 거리 주변에서 이런 다양한 종교 시설들을 볼 수 있다. 브라질의 관용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교통의 요충지
파울리스타 거리는 상파울루 교통의 중심이기도 하다.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지나가고, 수많은 버스 노선들이 이곳을 거쳐간다. 상파울루 어디에서든 파울리스타 거리로 오기는 쉽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정말 심하다.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상파울루가 워낙 큰 도시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훨씬 빠르다.
최근에는 자전거 도로도 만들었다. 브라질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지는 않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만든 것 같다. 주말 보행자 천국 때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관광객에게는 브라질의 현실
관광객 입장에서 파울리스타 거리는 좀 특별한 곳이다. 리우데자네이루나 다른 관광지와는 완전히 다른 브라질을 볼 수 있다. 여기는 진짜 브라질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곳이다. 관광을 위해 꾸며진 곳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다.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할 수 있다. 특별한 관광 명소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큰 도시의 비즈니스 거리니까. 하지만 브라질의 경제력과 다양성을 느끼고 싶다면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안전에는 주의해야 한다.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 특히 관광객은 도둑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낮에 사람 많은 시간에 가는 게 좋다. 비싸 보이는 물건은 들고 다니지 않는 게 좋다.
파울리스타 거리는 단순한 거리가 아니라 브라질 현대사의 축소판 같은 곳이다. 커피 경제에서 산업화, 그리고 글로벌화까지 브라질의 모든 변화가 이곳에 담겨 있다. 상파울루에 간다면 꼭 한 번은 걸어봐야 할 곳이다. 브라질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