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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루와투 사원: 70미터 절벽 위에서 바다를 지키는 발리의 수호신

no1fellow 2025. 6. 17. 09:38

울루와투 사원
울루와투 사원

서론

발리에서 울루와투 사원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신기했다. 70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끝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사원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위험한 곳에 사원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발리 사람들의 신앙심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특히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사원의 실루엣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원숭이들이 사원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도 재미있었는데, 관광객들 가방을 뺏어가는 걸 보고 좀 놀랐다.

11세기부터 시작된 바다의 수호신

울루와투 사원의 역사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바에서 온 힌두 성인 엠푸 쿠투란이 이곳에 처음 작은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울루와투'는 발리어로 '바위 끝'이라는 뜻인데, 정말 이름 그대로 바위 절벽 끝에 있다.

16세기에 또 다른 성인인 다눅 니라타가 사원을 확장했다. 이분은 발리 힌두교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데, 바다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바다와 관련된 여러 사원을 지었다. 울루와투 사원도 그 중 하나다.

발리 사람들은 울루와투를 '바다의 수호신' 사원이라고 여긴다. 인도양의 거친 파도로부터 발리를 지켜주는 신성한 곳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이 사원이 있는 부킷 반도 남쪽은 파도가 정말 세다. 서퍼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위험한 바다다.

발리 힌두교의 독특한 세계관

울루와투 사원을 이해하려면 발리 힌두교를 알아야 한다. 발리 힌두교는 인도 힌두교와 발리 토착 신앙이 섞인 독특한 종교다. 특히 자연 숭배 요소가 강해서 산, 바다, 호수 같은 자연물을 신성하게 여긴다.

발리에는 '카향안(Kahyangan)'이라는 개념이 있다. 신들이 거주하는 신성한 장소를 뜻하는데, 울루와투는 발리의 6대 카향안 중 하나다. 특히 '바다의 카향안'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이나 해운업자들이 자주 찾아와서 기도한다.

사원의 주신은 루드라(Rudra)다. 시바신의 한 형태인데, 파괴와 재생을 관장하는 신이다. 바다의 거친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발리 사람들은 루드라가 악령들로부터 섬을 보호해준다고 믿는다.

절벽 위의 건축 예술

울루와투 사원의 건축은 정말 독특하다. 절벽 끝에 있다 보니 평지에 짓는 사원과는 완전히 다른 설계가 필요했다. 강한 바닷바람과 염분에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야 했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사원 입구의 '찬디 벤타르(Candi Bentar)'가 특히 인상적이다. 둘로 갈라진 문인데, 선악이 분리되는 상징이라고 한다. 악한 기운은 들어오지 못하고 선한 기운만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디자인도 정말 우아하다.

사원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검은 화산석으로 만든 건물들이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린다. 인공적인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하는 발리인들의 미의식을 보여준다.

원숭이들의 왕국

울루와투 사원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원숭이들이다. 긴꼬리 마카크들이 사원 주변에 떼를 지어 살고 있다. 발리 사람들은 이 원숭이들을 사원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 하누만(원숭이 신)의 후예라고 믿는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좀 골칫거리다. 이 원숭이들이 정말 똑똑해서 관광객들의 가방이나 모자, 안경 같은 걸 재빠르게 훔쳐간다. 나도 당할 뻔했는데, 가이드가 미리 경고해줘서 조심했다. 훔쳐간 물건을 되찾으려면 바나나 같은 음식과 바꿔야 한다고 한다.

원숭이들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어떤 관광객은 선글라스를 빼앗겨서 한참 동안 원숭이와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모자를 뺏긴 후 원숭이가 쓰고 다니는 걸 봤다고 한다. 짜증나면서도 웃긴 상황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케착 댄스

울루와투 사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케착 댄스다. 매일 해질 무렵 사원 근처 야외 극장에서 케착 댄스 공연이 열린다. 100명 가까운 남자들이 원을 그리며 앉아서 "케착, 케착" 하는 소리를 내면서 라마야나 이야기를 연기하는 전통 춤이다.

처음 봤을 때는 좀 신기했다. 악기 없이 사람 목소리만으로 음악을 만드는데 정말 몽환적이었다. 특히 불 위에서 춤추는 장면은 정말 스릴 넘쳤다. 맨발로 뜨거운 숯불 위를 밟고 춤추는데 어떻게 화상을 입지 않는지 신기했다.

케착 댄스는 원래 종교 의식이었는데 지금은 관광 공연이 되었다. 좀 상업화된 면이 있지만 그래도 발리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해질 무렵 절벽 위에서 보는 케착 댄스는 정말 환상적이다.

일몰 명소로 유명한 이유

울루와투 사원이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몰이다. 서쪽을 향한 절벽에 있어서 인도양으로 지는 해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건기인 4월부터 10월까지는 정말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다.

해질 무렵이 되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절벽 가장자리는 정말 위험해 보이는데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이드들이 계속 조심하라고 하는데도 아슬아슬한 곳까지 가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일몰 시간에 갔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사원의 실루엣이 그림자처럼 떠오르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왜 이곳이 발리 최고의 일몰 명소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서핑의 성지 부킷 반도

울루와투 사원이 있는 부킷 반도는 서핑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울루와투 비치를 비롯해 패당패당, 빙긴, 드림랜드 등 세계적인 서핑 스팟들이 몰려 있다. 인도양의 강한 파도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웨이브들 때문이다.

사원에서 아래쪽 바다를 내려다보면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70미터 아래에서 개미처럼 보이는 서퍼들이 거대한 파도와 싸우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부킷 반도가 서핑으로 유명해지면서 울루와투 사원도 덩달아 관광객이 늘었다. 서핑을 하러 온 사람들이 사원도 구경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종교와 스포츠가 만나는 독특한 조합이다.

발리 관광 개발의 명암

울루와투 지역은 발리 관광 개발의 명암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2000년대 들어 부킷 반도에 고급 리조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급속히 개발되었다. 원래 메마른 땅이었던 이곳이 발리의 새로운 관광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도 많다.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특히 물 부족이 심각하다. 원래 건조한 지역인데 리조트와 골프장들이 물을 너무 많이 써서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다고 한다.

울루와투 사원도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매일 수천 명이 몰려드니까 사원이 손상되고, 주변 환경도 오염되고 있다. 신성한 장소가 관광 상품이 되면서 원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깝다.

발리인들의 신앙과 전통

그래도 울루와투 사원은 여전히 발리인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장소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러 오는 현지인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갈루간이나 쿠닌간 같은 발리 전통 명절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발리인들의 기도 모습을 보면 정말 경건하다. 하얀 옷을 입고 꽃과 향을 들고 와서 정성스럽게 기도한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와중에도 자신들만의 신성한 시간을 갖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특별한 의식이 열린다고 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달빛을 받으며 하는 기도가 정말 신비로울 것 같다. 관광객들은 볼 수 없는 발리인들만의 신성한 시간이다.

지속가능한 관광의 필요성

울루와투 사원을 보면서 느낀 건 지속가능한 관광의 중요성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관광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관광객 과밀은 결국 그 아름다움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발리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환경 보호를 강화하고, 관광객들에게도 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사원에 들어갈 때 사롱을 입어야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말라고 안내한다.

관광객들도 더 의식 있게 여행해야 할 것 같다. 단순히 사진 찍고 구경하는 것을 넘어서 그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이런 아름다운 곳들을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울루와투 사원은 자연과 종교, 그리고 인간이 만나는 신비로운 장소다. 70미터 절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수백 년간 기도를 받아온 이 작은 사원은 발리의 영적인 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발리에 간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지만,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으로 가면 더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