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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 400년을 견뎌온 강남 정원의 시와 꿈

no1fellow 2025. 6. 24. 08:53

예원
예원

서론

예원에 들어서는 순간 현대 상하이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구불구불한 회랑을 따라 걸으니 정말 400년 전 명나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특히 삼수당에서 바라본 연못과 가산의 조화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물에 비친 누각들과 꾸불꾸불한 다리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시적이었다. 용벽 앞에서는 섬세한 조각 솜씨에 감탄했고, 만화루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정원을 내려다보는 여유도 만끽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옥영롱이라는 기묘한 모양의 괴석이었다. 자연이 만든 예술품 같았다. 현대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고전적인 공간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바로 옆 예원상가의 번화함과 완전히 대조적이어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중국 정원 문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명나라 관리의 아버지를 위한 효심의 정원

예원(豫園)의 역사는 1559년 명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천성 포정사(布政使)를 지낸 반윤단(潘允端)이 아버지 반은(潘恩)을 위해 만든 사가 정원이었다. 아버지의 노년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드리고 싶다는 효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豫)라는 글자에는 '즐겁다', '평안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반윤단은 당시 강남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다. 그의 아버지 반은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을 재현한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원 조성에는 18년이 걸렸다. 1559년부터 1577년까지 무려 18년간 공을 들여서 만든 것이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용과 정성이 들어간 프로젝트였다. 전국에서 유명한 조경사들을 불러모았고, 기묘한 모양의 돌들도 각지에서 가져왔다. 결과는 강남 지역 최고의 사가 정원이었다.

강남 정원 양식의 완성체

예원은 중국 고전 정원 중에서도 강남(江南) 정원의 전형을 보여준다. 강남 정원의 특징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연의 축소판을 만드는 것이다. 산, 물, 건물, 식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천연 풍경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원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의 활용이다. 크고 작은 연못들이 정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정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수경(水景)을 이룬다. 연못 가운데 있는 섬들과 그것을 잇는 구불구불한 다리들이 변화무쌍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산(假山) 조성도 뛰어나다. 인공으로 만든 산이지만 마치 자연 산악처럼 보인다. 특히 대여산(大假山)은 높이 12미터로 정원 안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정원 전체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괴석, 옥영롱

예원의 보물 중 하나는 옥영롱(玉玲瓏)이라는 괴석이다. 높이 3.3미터의 이 돌은 800년 전 송나라 때 태호에서 채취된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괴석 중 하나다. 원래는 북송 때 개봉의 궁궐에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옥영롱의 가장 신기한 특징은 구멍이 많다는 것이다. 돌 전체에 크고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어서 마치 레이스처럼 보인다. 이 구멍들 때문에 '수투(瘦)·주(漏)·투(透)'라는 중국 괴석의 3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고 평가받는다. 수는 날씬함, 주는 구멍이 많음, 투는 투명함을 의미한다.

옥영롱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용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이 만든 추상 예술 작품 같다. 중국인들은 이런 돌을 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시상을 얻었다고 한다.

전란과 파괴, 그리고 재건의 역사

예원은 400년 역사 동안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명나라 말기 농민 반란과 청군의 침입으로 크게 훼손되었고, 청나라 초기에 일부 복원되었다. 하지만 원래 모습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다.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 때는 더 큰 피해를 입었다. 1853년부터 1855년까지 소도회(小刀會)라는 비밀결사가 이곳을 본거지로 삼으면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 특히 정원의 정교한 조경들이 크게 훼손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일제강점기와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했을 때 예원도 군사 시설로 사용되면서 본래 모습을 잃었다. 해방 후에도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1950년대 대복원과 현재 모습의 완성

현재 우리가 보는 예원의 모습은 대부분 1950년대 복원 작업의 결과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상하이시 정부는 예원을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1956년부터 1961년까지 5년간 진행된 이 작업은 예원 역사상 가장 체계적인 복원이었다.

복원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고증 작업이었다. 명청 시대 기록들과 옛 그림들을 참고해서 원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려 했다. 특히 강남 정원의 전통 기법을 그대로 살려서 복원했다. 전국에서 전통 조경 기술자들을 불러모아서 작업했다.

1961년 복원이 완료된 예원은 국가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82년에는 국무원이 지정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가 되었다.

6개 구역으로 나뉜 정교한 공간 구성

현재 예원은 총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 구역마다 고유한 테마와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체 면적은 2만 평방미터로 그리 크지 않지만, 워낙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실제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

삼수당(三穗堂) 구역은 예원의 중심부다. 가장 큰 연못인 삼수당 앞 연못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삼수당은 원래 반윤단이 손님을 접대하던 대청이었다. 지금도 정원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다.

만화루(萬花樓) 구역은 2층 누각인 만화루를 중심으로 한 공간이다. 만화루에서 내려다보는 정원 전체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특히 봄에 꽃이 필 때는 정말 장관이다.

용벽과 회랑, 정원을 거니는 예술

예원의 또 다른 명물은 용벽(龍牆)이다. 길이 100미터가 넘는 이 벽에는 생동감 넘치는 용 조각이 새겨져 있다. 회색 벽돌 위에 흰 회반죽으로 용을 조각한 것인데, 마치 용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특히 머리 부분의 표현이 정교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한다.

용벽을 따라 이어지는 회랑(回廊)도 예원의 백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계속 바뀐다.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회랑의 천장과 기둥에도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회랑을 걸으면서 보는 정원의 모습은 정말 다채롭다. 때로는 연못이 보이고, 때로는 가산이 보이고, 때로는 꽃밭이 보인다. 같은 장소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 정원의 '이보일경(移步一景)' -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미학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절기별 감상 포인트

예원은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봄에는 복숭아꽃, 배꽃, 철쭉이 만발해서 정원 전체가 화사해진다. 특히 만화루에서 내려다보는 봄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연못 주변의 버들도 연초록 새순을 틸어서 생명력이 넘친다.

여름에는 연꽃이 주인공이다. 크고 작은 연못마다 연꽃이 피어서 정원 전체가 향기로 가득하다. 연잎 위에 맺힌 이슬방울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더위를 피해 그늘진 회랑에서 쉬는 재미도 있다.

가을에는 단풍과 국화가 어우러져서 정원을 물들인다. 특히 대여산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풍경이 장관이다. 붉고 노란 단풍이 연못에 비치면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다. 하얀 눈이 내리면 정원 전체가 수묵화 같은 분위기가 된다.

예원상가와 전통 먹거리의 천국

예원 바로 옆에는 예원상가(豫園商城)가 있다. 명청 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상가에서 각종 전통 먹거리와 기념품을 살 수 있다. 특히 상하이 전통 간식들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곳은 남상만두점(南翔饅頭店)이다. 1900년 창업한 이 가게는 상하이 샤오롱바오(小籠包)의 원조로 여겨진다. 얇은 피 안에 뜨거운 육즙이 가득한 샤오롱바오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항상 긴 줄이 서 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녹파관(綠波廊)도 유명하다. 1979년 개업한 이 레스토랑은 예원의 정취를 그대로 살린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창 너머로 예원의 풍경을 보면서 식사할 수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상하이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들이 특색이다.

현대 상하이 속 전통문화의 보루

현대 상하이는 초고속 발전을 거듭하면서 많은 전통 문화가 사라졌다. 하지만 예원은 그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꿋꿋이 전통을 지켜내고 있다. 마천루들로 둘러싸인 도심 한복판에서 400년 전 정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정원 문화에 대해 잘 모르던 젊은이들이 예원을 방문한 후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통 건축과 조경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면서 조상들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진정한 중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상하이의 현대적인 모습만 보고 가면 아쉬울 텐데, 예원에서 중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예원을 보고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문화유산 보존과 관광 개발의 균형

예원은 문화유산 보존과 관광 개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 정원의 정취가 사라질 수 있지만, 완전히 폐쇄하면 교육적 가치가 없어진다. 적절한 선에서 개방하면서도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과제다.

최근에는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연휴나 주말에는 사전 예약제를 운영해서 과밀을 방지한다. 또 정원 내에서의 행동 규칙도 엄격하게 적용한다. 식물을 꺾거나 돌에 낙서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관리도 도입하고 있다. QR 코드를 통한 무선 가이드, AR을 활용한 역사 체험 등으로 관광객들에게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인파 집중을 분산시키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예원은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시대에 발맞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25년까지 주변 지역을 포함한 종합적인 문화관광단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단순한 정원 관람을 넘어서 전통 문화를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려고 한다. 중국 정원 문화에 대한 강의, 전통 조경 기법 체험, 서예와 그림 교실 등을 통해 더 깊이 있는 문화 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젊은 세대들이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국제적인 문화 교류도 늘릴 계획이다. 세계 각국의 정원과 교류하면서 서로 다른 정원 문화를 비교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중국 정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다른 나라의 정원 문화도 배우려는 것이다.

예원을 거닐면서 느낀 건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었다. 400년 전 만들어진 이 공간이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 물과 돌, 나무와 건물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정말 완벽했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데도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중국 조상들의 미적 감각과 기술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도시의 소음과 번잡함에서 벗어나 고요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문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