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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 정글에 잠든 크메르 제국의 찬란한 꿈

no1fellow 2025. 6. 16. 14:21

앙코르 와트
앙코르 와트

서론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앙코르 와트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러 갔는데,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한 사원의 실루엣이 정말 신비로웠다. 특히 연못에 반사된 앙코르 와트의 모습을 보면서 "800년 전에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벽면의 정교한 조각들을 보니까 더 놀라웠다. 힌두교 신화의 모든 이야기가 돌에 새겨져 있었다. 정말 살아있는 역사책 같았다.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절정기

앙코르 와트는 1113년부터 1150년경까지 약 37년간에 걸쳐 지어졌다. 크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 7세가 비슈누 신에게 바치기 위해 건설한 힌두 사원이었다. 당시 크메르 제국은 동남아시아 전체를 지배하는 강대국이었다. 지금의 캄보디아, 베트남 남부, 라오스, 태국 일부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수리야바르만 7세는 정말 야심찬 왕이었다. 자신을 비슈누 신의 화신이라고 믿었고, 그에 걸맞는 거대한 사원을 만들고 싶어했다. 앙코르 와트는 그런 왕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크메르 제국의 힘과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었다.

건설에는 30만 명의 노동자와 6천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온 제국의 힘을 모아서 만든 프로젝트였다. 돌을 운반하기 위해 50킬로미터 떨어진 채석장에서 운하를 만들어 가져왔다고 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물

앙코르 와트는 정말 거대하다. 전체 면적이 162헥타르로 여의도 절반 정도 크기다. 중앙 탑의 높이는 65미터인데, 12세기 기준으로는 정말 높은 건물이었을 것이다. 외벽의 길이만 해도 3.6킬로미터나 된다. 한 바퀴 돌아보는 데 하루 종일 걸린다.

건축 양식도 독특하다. 힌두교의 우주관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인데, 중앙의 5개 탑은 메루 산(힌두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신성한 산)을 상징한다. 주변의 해자는 바다를, 성벽은 산맥을 의미한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 모형인 셈이다.

실제로 가보니까 정말 잘 설계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중앙 탑까지 가는 길이 점점 높아지면서 신성한 곳으로 올라가는 느낌을 준다. 또 어디서 봐도 균형이 잡혀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800년 전 건축가들의 미적 감각이 정말 뛰어났던 것 같다.

돌에 새긴 힌두교 서사시

앙코르 와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벽면 조각들이다. 힌두교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특히 '바다 휘젓기(Churning of the Ocean of Milk)'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신들과 아수라(악마)들이 바다를 휘저어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드는 이야기인데, 100미터가 넘는 긴 벽면에 그려져 있다.

조각의 정교함도 놀랍다. 인물들의 표정이나 옷 주름까지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춤추는 압사라(천녀) 조각들은 정말 살아있는 것 같다. 어떻게 800년 전에 이런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현대 조각가들도 감탄할 정도의 수준이다.

각 조각마다 의미가 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힌두교 철학과 우주관을 담고 있다. 왕과 신하들의 모습도 있어서 당시 크메르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정말 돌로 만든 역사책이라는 느낌이었다.

힌두교에서 불교로, 그리고 다시

흥미로운 건 앙코르 와트가 원래 힌두 사원이었다가 나중에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3세기경 크메르 제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앙코르 와트도 불교 사원이 되었다. 힌두교 조각 위에 불상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흔적을 볼 수 있다. 힌두교 신상들이 파괴되거나 불상으로 바뀐 곳들이 있다. 종교가 바뀌면서 예술 작품들도 운명이 바뀐 셈이다.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현재는 불교도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캄보디아 국민의 95%가 불교도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침 일찍 가면 승려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종교 공간이기도 하다.

정글에 묻혀 잊혀진 500년

15세기경 크메르 제국이 쇠퇴하면서 앙코르 와트도 버려졌다. 수도가 프놈펜으로 옮겨지면서 앙코르는 점점 잊혀져 갔다. 정글이 사원을 덮기 시작했고, 거대한 나무들이 건물 사이로 자라났다.

500년 동안 앙코르 와트는 정글 속에 숨어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외부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이런 거대한 문명이 동남아시아에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가끔 승려들이나 사냥꾼들이 찾을 뿐이었다. 그들도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냥 오래된 폐허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아까운 일이었다.

1860년 프랑스 탐험가의 재발견

1860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앙리 무오가 앙코르 와트를 서구 세계에 처음 소개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이곳을 발견한 무오는 그 웅장함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건축에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라고 기록했다.

무오의 보고서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앙코르 와트는 일약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고고학자, 건축가, 예술가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찾았다. 동남아시아에 이런 고도의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발견 과정에서 많은 조각상과 유물들이 유럽으로 반출되었다.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배하면서 체계적으로 가져간 것들도 많다. 지금도 파리의 기메 박물관 등에 앙코르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세기의 시련과 복원

20세기 앙코르 와트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그나마 보존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1970년대 크메르 루주 정권 때는 큰 피해를 입었다. 종교를 부정하던 크메르 루주는 불상들을 파괴했고, 많은 조각상들이 손상되었다.

1980년대부터는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보호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워낙 큰 규모라서 복원에는 수십 년이 더 걸릴 것 같다.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복원팀이 와서 작업하고 있다. 일본, 프랑스, 독일, 인도 등이 각각 다른 구역을 맡아서 복원하고 있다. 한국도 프리아 칸 사원 복원에 참여했다고 한다. 국제적인 협력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관광 명소가 된 현재

지금 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 최고의 관광 명소다. 연간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정말 사람이 많았다. 특히 일출 시간에는 연못 앞에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다.

입장료도 꽤 비싸다. 1일권이 37달러, 3일권이 62달러다. 캄보디아 물가로는 정말 비싼 편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하루로는 다 못 보니까 3일권을 사는 게 좋다.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조각들의 의미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니까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영어 가이드는 하루에 25달러 정도 한다. 한국어 가이드도 있는데 좀 더 비싸다.

관광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

앙코르 와트의 가장 큰 문제는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연간 200만 명이 800년 된 유적을 밟고 다니니까 손상이 불가피하다. 특히 중앙 탑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은 정말 위험해 보였다. 안전사고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캄보디아 정부는 관광 수입과 유적 보존 사이에서 고민이 클 것이다. 관광업이 캄보디아 경제의 중요한 축이라서 관광객을 제한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유적이 훼손되면 결국 관광 가치도 떨어질 것이다.

최근에는 입장객 수 제한이나 시간 제한 등의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또 주변 지역에 새로운 관광 코스를 만들어서 앙코르 와트로 몰리는 관광객을 분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캄보디아인들의 자부심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앙코르 와트는 정말 특별한 존재다. 국기에도 앙코르 와트가 그려져 있을 정도로 국가의 상징이다. 크메르 루주 시절의 비극을 겪은 캄보디아인들에게 앙코르 와트는 자신들의 위대한 과거를 보여주는 증거다.

시엠립에서 만난 현지 사람들은 정말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조상들이 이런 걸 만들었다"면서 뿌듯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젊은 세대들도 앙코르 와트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크메르 제국 역사를 중요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데 앙코르 와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문명의 위대함

앙코르 와트를 보면서 느낀 건 동남아시아 문명이 결코 "후진" 문명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기술력과 예술 수준은 당시 유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뛰어난 면도 많았다.

특히 수리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앙코르 전체 지역에 거대한 저수지와 운하 시스템을 만들어서 농업과 교통을 해결했다. 이런 대규모 토목 공사는 당시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종교적 관용도 주목할 만하다. 힌두교와 불교가 갈등 없이 공존했고,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독특한 크메르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런 개방성과 포용력이 크메르 제국의 힘이었을 것이다.

앙코르 와트는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소중한 유산이다. 800년 전 크메르인들의 꿈과 신앙, 그리고 예술적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글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다. 시엠립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지만,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다양성과 위대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