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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2500년 전 민주주의의 꿈이 시작된 성스러운 언덕

no1fellow 2025. 6. 14. 07:11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

서론

아테네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관광객들로 북적여서 상상했던 신비로운 분위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서서 "여기서 2500년 전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철학을 논했구나"라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았다. 이곳이 바로 서양 문명의 출발점이라는 게 실감났다. 비록 무너진 돌덩어리들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 곳이었다.

높은 언덕 위의 신들의 거주지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높은 도시'라는 뜻이다. 아테네 시내에서 150미터 높이의 평평한 바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을 신들이 사는 성역으로 여겼다. 자연 요새 같은 지형이어서 적의 침입을 막기에도 좋았고, 신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이 있다고 한다. 미케네 시대에는 왕궁이 있었고, 그 후 신전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 가장 중요했는데,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아테나에서 나온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크로폴리스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의 정신적 중심이자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이 언덕을 보면서 "우리는 아테네 시민이다"라는 소속감을 느꼈을 것이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대역사

지금 우리가 보는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은 대부분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절정기였다.

페리클레스는 정말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아크로폴리스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서 아테네의 위상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리스 최고의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 조각가 페이디아스를 동원해서 전무후무한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다른 그리스 도시들에서 거둬들인 동맹금을 자기네 건축에 쓴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그래도 페리클레스는 밀어붙였다. "후세에 아테네의 영광을 남기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완벽함의 극치,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은 정말 완벽한 건축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온갖 수학적 계산과 착시 효과가 숨어 있다. 기둥들이 완전히 수직이 아니라 살짝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바닥도 완전히 평평하지 않고 약간 볼록하다.

이런 미묘한 변화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한 비율감을 만들어낸다. 멀리서 보면 모든 선이 완벽하게 직선으로 보인다. 2500년 전에 이런 정교한 계산을 했다는 게 정말 놀랍다. 현대 건축가들도 감탄할 정도의 기술이다.

신전 내부에는 페이디아스가 만든 아테나 여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높이가 12미터나 되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조각상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복원품으로만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보고 얼마나 경외감을 느꼈을까.

민주주의가 탄생한 곳

아크로폴리스 아래쪽에는 아고라가 있었다. 시민들이 모여서 정치를 논하고 상거래를 하던 광장이었다. 여기서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당시 민주주의는 지금과 달랐다. 여자와 노예는 참여할 수 없었고,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만 가능했다.

그래도 왕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한다는 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자"는 것이었으니까. 이 아이디어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도 이곳에서 활동했다.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며 진리와 정의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철학과 정치학의 기초가 모두 여기서 나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로마 시대와 기독교의 침입

기원전 146년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도 아크로폴리스는 계속 존중받았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동경했기 때문에 아크로폴리스를 훼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보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문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후였다. 4-6세기경 파르테논 신전이 성모 마리아 교회로 바뀌었다. 이슬람교가 들어온 후에는 모스크가 되기도 했다. 종교가 바뀔 때마다 건물도 개조되면서 원래 모습이 많이 변했다.

그래도 기본 구조는 유지되었다. 워낙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이라 2000년이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그리스 건축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 폭발 사고

1456년부터 아테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파르테논 신전은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프로필라이아는 터키 총독의 관저가 되었다. 이 시기에도 건물들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그런데 1687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베네치아군이 아테네를 공격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에 포탄이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터키군이 신전 안에 화약을 저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신전이 크게 파괴되었다.

지금 파르테논 신전이 지붕 없이 기둥만 남아있는 모습인 건 이때 사고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약 이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도 완전한 모습의 파르테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엘진 경의 약탈과 대영박물관 논란

19세기 초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났다. 영국의 엘진 경이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들을 떼어가서 영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엘진 경이 터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지금 런던 대영박물관에 가면 파르테논 조각품들을 볼 수 있다. 정말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영국은 "우리가 잘 보존해왔고,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원래 자리에 있어야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근현대 그리스의 상징이 되다

1821년 그리스가 독립 전쟁을 시작했을 때 아크로폴리스는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400년간의 터키 지배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아크로폴리스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독립 후 그리스는 아크로폴리스 복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터키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을 철거하고 고대 그리스 모습을 되찾으려고 했다. 지금도 계속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차 대전 때는 나치 독일이 아크로폴리스에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걸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정말 굴욕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그리스 대학생들이 몰래 올라가서 그 깃발을 내리고 그리스 국기를 올렸다는 일화가 있다.

관광 명소가 된 현재와 보존의 어려움

지금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최고의 관광 명소다. 연간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정말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구경하기 어려웠다. 특히 여름에는 더위와 인파 때문에 정말 힘들다.

입장료도 꽤 비싸다. 성수기에는 20유로 정도 한다. 그래도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다. 다만 사전에 온라인으로 표를 예약하는 게 좋다. 현장에서 사면 줄이 정말 길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도 꼭 가봐야 할 곳이다. 2009년에 새로 지은 현대적인 박물관인데,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특히 3층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이 내려다보이는데, 정말 멋진 전망이다.

환경오염과 보존의 딜레마

아크로폴리스 보존이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기오염이다. 아테네의 스모그와 산성비가 대리석을 부식시키고 있다. 2500년을 버텨온 건물이 근대화 이후 100년 만에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관광객들도 문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건물에 무리가 가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내부는 아예 출입금지가 되었고, 일부 구역은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보존과 관광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가 어렵다.

그리스 정부는 계속 복원 작업을 하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EU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경제 위기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인류 공동의 유산을 보존하는 일인데 그리스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아크로폴리스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민주주의, 철학, 연극, 올림픽 등등. 지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는 정말 대단한 발명이었다. 왕이나 신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혁신적이었을까.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작이 여기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아크로폴리스에 서 있으니까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미신과 권위에서 벗어나 이성과 토론으로 진리를 찾으려고 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비록 지금은 무너진 돌덩어리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영원할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는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라 인류 정신사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시작된 자유와 이성의 전통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아테네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지만, 역사를 알고 가면 훨씬 더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