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바르셀로나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신기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차원이 달랐다. 이게 성당이라고? 마치 거대한 모래성 같기도 하고, 외계인이 만든 건물 같기도 했다. 140년째 짓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떤 미친 사람이 이런 걸 설계했을까 싶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안토니 가우디였다.
가톨릭 신자들의 소박한 꿈에서 시작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시작된 건 1882년이었다. 처음에는 바르셀로나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성가정(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바치는 성당을 짓자고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원래는 그냥 평범한 고딕 성당을 지으려고 했던 것 같다.
첫 번째 건축가는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였는데, 1년 만에 그만뒀다. 건축위원회와 의견이 안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째 건축가로 31살의 젊은 가우디가 선택되었다. 당시 가우디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는데, 이 프로젝트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우디는 처음에는 기존 설계를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곧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급진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완전히 다른 건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자연을 모방한 가우디의 천재적 아이디어
가우디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건축에 적용한 것이었다. 직선은 거의 없고 모든 게 곡선이다. 기둥은 나무처럼 생겼고, 천장은 숲속 나뭇잎 같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정말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특히 내부에 들어가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 감동이었다. 기둥들이 나무줄기처럼 위로 올라가면서 가지처럼 갈라지고, 천장에는 나뭇잎 모양의 장식들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숲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모습도 환상적이었다.
가우디는 수학과 기하학에도 능했다. 복잡해 보이는 곡선들도 사실은 정확한 계산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쌍곡면, 포물면 같은 기하학적 형태를 건축에 적용했는데, 당시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시도였다.
43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가우디
1883년부터 1926년 죽을 때까지 43년간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말년에는 거의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다른 프로젝트는 모두 거절하고 오직 사그라다 파밀리아만 생각했다.
가우디는 완벽주의자였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까지 직접 검토했고, 마음에 안 들면 부수고 다시 만들라고 했다. 그래서 공사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돈도 항상 부족했는데, 가우디는 기부금과 입장료로만 공사비를 충당하려고 했다.
1926년 6월 10일 가우디는 트램에 치여 죽었다. 낡은 옷을 입고 있어서 처음에는 거지인 줄 알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우디가 죽을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전체의 25%밖에 완성되지 않았다.
설계도 없이 계속되는 공사
가우디가 죽은 후가 더 문제였다. 정확한 설계도가 없었던 것이다. 가우디는 머릿속에 모든 설계를 가지고 있었고, 일부만 모형으로 만들어놨다. 그런데 스페인 내전 때 그 모형들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래서 후임 건축가들은 가우디가 남긴 단편적인 자료들을 보고 추측해서 공사를 계속해야 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가우디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으니까 논란도 많았다. 일부 건축가들은 "가우디가 설계하지 않은 부분은 짓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사는 계속되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우디의 설계 의도를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남은 모형 조각들을 3D 스캔하고 컴퓨터로 분석해서 원래 모습을 추정하는 방식이었다.
관광 수입으로 버티는 성당 건설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사비는 대부분 관광 수입으로 충당된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고 하는데, 입장료가 꽤 비싸다. 기본 입장료만 26유로 정도 하고, 탑에 올라가려면 더 내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온다.
나도 입장료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어가보니까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런 건축물은 세계 어디에도 없으니까. 또 이 돈으로 공사를 계속한다고 생각하니까 의미 있는 일에 기여하는 기분이었다.
코로나19 때는 관광객이 급감해서 공사가 중단될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관광객들이 돌아왔지만, 관광 수입에만 의존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2026년 완공 목표, 과연 가능할까
현재 계획으로는 2026년 가우디 서거 100주년에 맞춰 완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능할까 싶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 탑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영광의 파사드도 공사 중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공사가 지연되었고, 주변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다. 완공되면 관광객이 더 몰릴 텐데, 지역 주민들은 이미 관광객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고 불만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완공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완성이라는 것 자체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매력이니까.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있는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있다.
논란도 많은 가우디의 유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찬반 논란이 많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일부 건축가들은 "가우디가 죽은 후 지어진 부분은 가우디 건축이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특히 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의 원래 스타일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조각가 조제프 마리아 수비라크스가 만든 수난의 파사드 조각들은 정말 논란이 많았다. 가우디의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각지고 추상적이었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각 시대의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수비라크스의 조각들도 나름 인상적이다.
바르셀로나의 상징이 된 미완성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제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바르셀로나 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피카소나 미로 같은 예술가들도 유명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가장 인상적인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미완성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SNS 시대가 되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더욱 유명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찍히는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말 인기다. 나도 수십 장 찍었다.
종교를 넘어선 예술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당이지만 종교를 넘어선 예술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감동받는다. 나도 특별히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는 뭔가 숭고한 기분이 들었다.
가우디 자신도 나중에는 종교적 열정보다는 예술적 완성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성당을 짓는다기보다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구현하는 실험장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앞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어떻게 완성될지, 아니면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어떻게 되든 가우디가 시작한 이 미친 꿈은 계속될 것 같다. 140년째 짓고 있는 성당,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면서 느낀 건 인간의 상상력과 끈기의 힘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계속 추구하면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