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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명주탑: 30년 전 꿈이 현실이 된 상하이 부상의 상징

no1fellow 2025. 6. 23. 22:45

동방명주탑
동방명주탑

서론

처음 동방명주탑을 봤을 때 정말 독특한 디자인에 놀랐다. 크고 작은 구 11개가 수직으로 연결된 모습이 마치 거대한 젓가락에 구슬을 꿴 것 같았다. 특히 밤에 보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알록달록한 LED 조명이 구체들을 감싸면서 황푸강에 비친 모습까지 더해져서 상하이 야경의 백미를 보여줬다. 468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본 상하이 전경도 장관이었다. 외탄의 고전적인 건물들과 푸둥의 현대적인 마천루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농지였다고?" 하는 생각에 중국의 발전 속도가 정말 놀라웠다. 타워 안의 상하이 역사박물관에서 본 옛 사진들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1990년대 중국인들에게 이 탑이 얼마나 큰 희망과 자부심이었을지 상상이 갔다.

농지에서 피어난 미래 도시의 꿈

동방명주탑이 세워진 자리는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농지였다. 1990년 이전 푸둥은 상하이 시내에서 황푸강 건너편에 있는 농촌 지역이었다. "푸시(浦西)에 침대가 있어도 푸둥(浦東)에는 가지 않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다.

1990년 4월 덩샤오핑의 결단으로 푸둥 신구 개발이 시작되었다. 개혁개방의 새로운 실험장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농지를 국제금융지구로 만든다는 계획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다. 당시 중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동방명주탑은 그런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상징적 프로젝트였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통해 푸둥 개발의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 또 TV 방송용 송신탑이 필요하기도 했다. 상하이의 방송 인프라를 현대화하면서 동시에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일석이조의 계획이었다.

동양의 진주, 독특한 디자인의 탄생

동방명주탑(東方明珠塔)이라는 이름은 '동양의 진주'라는 의미다. 중국이 세계의 동쪽에서 빛나는 진주처럼 떠오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디자인도 이 컨셉에 맞춰 구슬을 꿴 듯한 독특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설계는 상하이 현대건축설계그룹의 장즈강(江志忠)이 담당했다. 그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비파행'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대주소주락옥반(大珠小珠落玉盤)" - 크고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진다는 구절이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었다.

총 11개의 구체가 세 개의 수직 기둥에 연결되어 있다. 가장 큰 구체는 직경 50미터로 하부구라고 부르고, 그 위에 직경 45미터의 상부구가 있다. 맨 위에는 직径 14미터의 태공구가 있다. 각 구체마다 전망대, 레스토랑, 전시장 등 다른 기능을 담고 있다.

4년간의 건설, 중국 기술력의 도전

1991년 건설이 시작된 동방명주탑은 1994년 10월 완공되었다. 총 공사비는 8억 3천만 위안(당시 약 1억 달러)이었다. 당시 중국으로서는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도전적인 프로젝트였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468미터 높이에 구체들을 정확히 설치하는 것이었다. 강풍과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구조 계산을 해야 했고, 각 구체의 무게 중심을 정확히 맞춰야 했다. 당시 중국의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일부 첨단 장비는 해외에서 도입해야 했다.

완공 당시 동방명주탑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타워였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높았다. 468미터라는 높이 자체가 중국인들에게는 큰 자부심이었다. "우리도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1990년대 중국의 희망과 자부심

1994년 개장한 동방명주탑은 즉시 중국 전역의 주목을 받았다. TV에서 매일 이 탑의 모습이 방영되었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동방명주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중국의 상징이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기존의 중국 건축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래적인 모습이 젊은이들의 꿈과 열망을 자극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를 끌었다.

외국인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줬다. 1990년대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동방명주탑을 보고 중국의 변화 속도에 놀랐다고 한다.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하이의 변천사

동방명주탑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전망대다. 263미터, 267미터, 350미터 높이에 각각 전망대가 있어서 상하이 전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최상층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압도적이다.

1990년대에는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푸둥 지역에는 동방명주탑 외에는 별다른 고층건물이 없었고, 외탄 너머로는 상하이 구시가지의 낡은 건물들이 보였다. 하지만 매년 올 때마다 풍경이 달라졌다.

지금은 동방명주탑 주변으로 상하이타워, 상하이월드파이낸셜센터, 진마오타워 등 초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30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된 것이다. 동방명주탑에서 바라보는 이 변화는 중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문화의 복합 공간

동방명주탑은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라 종합 엔터테인먼트 시설이다. 각 구체마다 다양한 시설이 들어있어서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다. 하부구에는 상하이 역사박물관이 있어서 상하이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267미터 높이에는 회전 레스토랑이 있다. 1시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360도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다. 가격은 비싸지만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에는 완벽한 장소다.

최근에는 VR 체험관, 4D 영화관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한 시설들도 추가되었다. 90년대 건물이지만 계속 새로운 콘텐츠를 도입해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도 개최한다.

상하이 스카이라인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

동방명주탑이 완공될 당시만 해도 상하이 스카이라인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더 높은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2008년 완공된 상하이월드파이낸셜센터(492미터), 2014년 상하이타워(632미터) 등에 밀려났다.

하지만 동방명주탑만의 독특한 매력은 여전하다. 높이로는 밀렸지만 디자인의 독창성과 상징적 의미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상하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LED 조명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서 더욱 화려한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별한 날에는 중국 국기나 상하이시 로고를 형상화한 조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산업과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동방명주탑은 상하이 관광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90년대 이후 상하이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고, 연간 3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입장료 수입만으로도 상당한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

또 주변 지역 개발에도 촉매 역할을 했다. 동방명주탑이 들어서면서 푸둥 지역의 땅값이 급상승했고, 각종 상업시설과 호텔들이 들어섰다. 루자쭈이 금융지구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하이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도 기여했다. 1990년대 해외 언론에서 상하이를 소개할 때 항상 동방명주탑이 등장했다. 중국의 급성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변신

최근 동방명주탑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 시스템, AR을 활용한 역사 체험, 드론 쇼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 30년 된 건물이지만 계속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맞춰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화제가 될 만한 콘텐츠도 개발하고 있다. 특별한 조명 쇼나 이벤트를 통해 젊은이들이 SNS에 올릴 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환경 친화적인 운영에도 신경 쓰고 있다. LED 조명으로 전환해서 전력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도 늘리고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 40년의 상징

2018년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동방명주탑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개혁개방의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재조명받았다. 40년 전 농촌이었던 곳에 이런 현대적 도시가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특히 해외 중국인들에게는 조국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는 상징이었다. 1990년대 중국을 떠났던 사람들이 몇십 년 만에 상하이를 방문해서 동방명주탑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중국 정부의 장기적 계획 수립과 실행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30년 전 불가능해 보였던 계획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은 중국 시스템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중국인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동방명주탑은 이제 30년차 베테랑이 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2025년까지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계획하고 있어서 더욱 현대적이고 친환경적인 시설로 거듭날 예정이다.

특히 메타버스,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가상현실로 1990년대 푸둥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게 하거나, AI 가이드가 개인 맞춤형 설명을 제공하는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 문화 콘텐츠도 강화하려고 한다. 상하이 발전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나 영화를 제작하고, 동방명주탑을 배경으로 한 각종 문화 행사를 늘릴 예정이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동방명주탑을 보면서 느낀 건 꿈의 힘이었다. 30년 전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그것이 또 다른 꿈들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탑 하나가 바꾼 것은 단순히 상하이의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큰 변화의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여전히 상하이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역사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는 상하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증인 역할을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