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처음 도쿄 스카이트리를 봤을 때 정말 놀랐다. 높이 634미터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인데, 단순히 높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일본다운 세심함과 기술력이 느껴졌다. 지진이 자주 나는 일본에서 이런 초고층 건물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도쿄 타워 시대의 끝
사실 도쿄 하면 도쿄 타워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1958년에 지어진 333미터 높이의 도쿄 타워는 50년 넘게 도쿄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문제가 생겼다.
디지털 방송으로 바뀌면서 더 높은 송신탑이 필요해졌다. 도쿄 주변에 고층 빌딩들이 계속 늘어나니까 도쿄 타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2011년 아날로그 방송이 완전히 종료되면서 새 타워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2003년 방송사들이 모여서 새로운 전파탑을 짓기로 했다. 처음에는 610미터로 계획했는데 나중에 634미터로 바뀌었다. 634라는 숫자도 재미있다. 무사시(634)라는 옛 지명에서 따온 건데, 일본인들은 이런 것도 신경을 쓴다.
지진 많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걸 지었을까
일본은 지진이 정말 많다. 그런 곳에서 634미터짜리 건물을 짓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실제로 스카이트리 공사 중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핵심은 '심주 제진 구조'라는 기술이다. 타워 가운데에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그 주위를 철골로 감싸는 방식이다. 지진이 나면 안팎이 다르게 흔들려서 지진 에너지를 상쇄시킨다고 한다. 일본 전통 건축 오층탑에서 힌트를 얻었다는데, 정말 신기하다.
실제로 일본 오층탑들은 수백 년 동안 지진을 잘 견뎌왔다. 가운데 기둥과 바깥 구조가 따로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원리였다. 옛날 기술을 현대식으로 응용한 셈이다.
보기보다 예쁘다
처음에는 그냥 현대적인 타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일본 전통 느낌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아래쪽은 삼각형, 위쪽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일본 전통색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밤에 불 켜진 모습이 정말 예쁘다. 두 가지 조명이 번갈아 나오는데, 파란색 계열 '이키'와 보라색 계열 '미야비'다. 이키는 에도 시대 멋을, 미야비는 고전 문학의 우아함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예쁘다.
주변에 벚꽃나무도 많이 심어놨다. 봄에 벚꽃 필 때 스카이트리와 함께 보면 정말 일본다운 풍경이 나온다. 가을 단풍도 괜찮다고 들었다.
기술 자랑하는 일본다운 건물
스카이트리는 기술 덩어리다. LED 조명만 3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컴퓨터로 조절해서 여러 가지 패턴을 만든다. 일본인들은 이런 거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정말 빠르다. 지상에서 350미터 전망대까지 40초 만에 올라간다. 그런데 귀가 먹먹하지 않다. 기압 조절을 완벽하게 해서 그렇다고 한다. 역시 일본 기술력이다.
전망대에서는 도쿄가 한눈에 보인다. 날씨 좋으면 후지산도 보인다는데 가봤을 때는 안 보였다. 450미터 높이에는 전망 회랑도 있는데, 여기서는 진짜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다.
변두리를 핫플레이스로 바꾼 마법
스카이트리가 있는 스미다구는 원래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곳이었다. 전통 공예나 작은 공장들이 많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오는 동네였다. 그런데 스카이트리가 생기니까 완전히 달라졌다.
바로 옆에 도쿄 소라마치라는 쇼핑몰도 생겼다. 300개 넘는 상점과 수족관, 플라네타리움까지 있어서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연간 방문객이 3천만 명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동네 경제도 확 살아났다. 호텔들이 들어서고 기존 가게들 매출도 늘었다. 부동산 값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물론 임대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상인들도 있겠지만.
만만치 않았던 건설 과정
스카이트리 건설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계획 발표했을 때 주민 반대가 꽤 있었다. 전파 영향이나 경관 파괴를 걱정했고, 공사 소음도 문제였다.
2008년부터 4년간 공사했는데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도 있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겪었다. 대지진 때는 공사를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꼭대기 안테나 설치할 때는 헬리콥터를 썼는데, 바람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해서 겨우 성공했다고 한다. 그 장면을 TV로 본 일본인들이 환호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애니메이션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명소
스카이트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정말 자주 나온다.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고질라 같은 괴수 영화에서도 단골이다. 새로운 도쿄의 상징이 된 것 같다.
한국 사람들도 일본 여행 가면 꼭 가는 곳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스카이트리 사진 올리는 사람들 정말 많다. 특히 야경이 예뻐서 사진 찍기 좋다.
계절마다 이벤트도 한다. 크리스마스 특별 조명, 새해 일출 이벤트, 여름 불꽃축제 연계 프로그램 등등. 갈 때마다 다른 걸 볼 수 있어서 좋다.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려는 일본의 의지
스카이트리는 일본이 다시 일어서려는 상징 같은 느낌이다. 2000년대 일본은 경제 침체로 힘든 시기였는데,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게 일본인들에게는 큰 의미였을 것이다.
2020 도쿄 올림픽 때도 배경으로 많이 나왔다. 코로나 때문에 분위기가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일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원래 목적인 방송 송신은 이미 달성했고, 이제는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6G 통신이나 스마트시티 같은 새로운 기술 실험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카이트리에 올라가서 도쿄를 내려다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일본의 모습이 이 타워 하나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