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도이수텝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서 점점 기대감이 커졌다. 해발 1,073미터 산 위에 있다는 사원이 어떨지 정말 궁금했다. 306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나가(용) 조각 난간을 보면서 힘을 냈다. 계단 정상에 도착해서 본 황금 첨탑은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첨탑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경건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전망대에서 바라본 치앙마이 시내 풍경이었다.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 일몰 시간에는 온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700년 전 란나 왕국 시절부터 이곳에서 치앙마이를 지켜본 사원의 위엄이 느껴졌다. 산 위 청정한 공기와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흰 코끼리가 선택한 성스러운 땅
도이수텝사원의 창건 설화는 정말 신비롭다. 1383년 란나 왕국의 쿠나 왕 시대에 수코타이에서 온 스님이 부처의 사리 한 조각을 가져왔다. 왕은 이 사리를 모실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흰 코끼리에게 사리를 지우고 자유롭게 다니도록 했다. 흰 코끼리는 치앙마이 시내를 벗어나 도이수텝 산을 올라가더니 정상 근처에서 세 번 울고 무릎을 꿇고 죽었다고 한다.
왕은 이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사원을 짓기로 결정했다. 도이수텝이라는 이름도 그때부터 유래되었다. '도이(Doi)'는 태국 북부 방언으로 '산'을 뜻하고, '수텝(Suthep)'은 그 스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도 사원 입구에는 흰 코끼리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이 전설을 기념하고 있다.
실제 건설은 1386년에 시작되어 1388년에 완공되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공사였다. 험한 산길을 뚫고 무거운 자재들을 운반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란나 왕국의 권위와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란나 왕국 700년 역사의 증인
도이수텝사원은 란나 왕국(1296-1558)의 역사와 함께해온 산 증인이다. 란나 왕국은 현재의 태국 북부, 미얀마 샨주, 라오스 북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왕국이었다. 치앙마이는 그 수도였고, 도이수텝사원은 왕국의 정신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역대 란나 왕들은 모두 이곳을 중요한 성지로 여겼다. 즉위식이나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도이수텝사원에서 법회를 열었다. 또 왕실의 후원으로 지속적인 보수와 확장이 이뤄졌다. 현재 우리가 보는 황금 첨탑도 16세기 란나 왕들이 확장한 것이다.
1558년 버마군의 침입으로 란나 왕국이 멸망한 후에도 도이수텝사원은 치앙마이 사람들의 신앙 중심지로 남았다. 버마 지배기, 태국 중앙정부 편입 후에도 변함없이 사랑받아왔다. 정치적 격변과 상관없이 700년간 치앙마이를 지켜온 불변의 존재인 셈이다.
306개 계단과 나가의 전설
도이수텝사원에 오르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306개의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것이다. 이 계단은 155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양쪽에 아름다운 나가(용)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나가는 태국 불교에서 부처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신화적 존재다.
계단의 나가 조각은 정말 정교하다. 7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가 긴 몸을 구불거리며 계단을 따라 이어진다. 각 머리마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밤에는 조명을 받아서 더욱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306개라는 숫자에도 의미가 있다.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숫자들의 조합이라고 한다. 계단을 오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수행이자 정화 과정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많은 신도들이 한 걸음 한 걸음 기도하면서 천천히 오른다. 관광객들에게는 약간 힘들 수 있지만, 그만큼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
황금 첨탑 속에 잠든 부처의 사리
도이수텝사원의 중심은 높이 24미터의 황금 첨탑이다. 첨탑 전체가 금박으로 덮여 있어서 햇살을 받으면 찬란하게 빛난다. 이 첨탑 안에는 창건 당시부터 모셔진 부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란나 왕국 사람들은 이 사리 때문에 도이수텝사원을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첨탑 주변에는 4개의 황금 양산이 있다. 이는 부처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상징이다. 또 첨탑 둘레에는 작은 종들이 매달려 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소리를 낸다. 이 종소리는 부처의 가르침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도들은 첨탑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기도한다. 이를 '빠리다끄시나'라고 하는데, 태국 불교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보통 3바퀴를 도는데, 각각 부처, 법(가르침), 승가(스님들)에 대한 귀의를 의미한다. 특히 불교 명절이나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몰려와서 이 의식을 행한다.
치앙마이 전경을 한눈에, 구름 위의 전망대
도이수텝사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치앙마이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해발 1,073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치앙마이 전경은 정말 장관이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치앙마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시가지의 성벽부터 신시가지의 현대적 건물들까지 모두 볼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일몰 때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치앙마이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멀리 펼쳐진 논밭과 산들도 석양을 받아 환상적인 색깔을 보여준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순간을 보기 위해 일부러 오후 늦게 올라온다.
또 건기(11월~2월)에는 종종 치앙마이 시내가 구름 아래 가려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섬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이런 날에는 사원이 정말 천상계에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란나 건축 양식의 정수
도이수텝사원은 란나 건축 양식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란나 건축은 태국 중부의 건축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지붕의 모양이다. 란나 양식은 지붕의 경사가 더 가파르고, 처마가 더 길게 뻗어있다. 이는 북부 지역의 많은 비에 대비한 것이다.
목조 건축의 세부 장식도 정교하다. 처마 끝의 조각과 기둥의 문양들은 모두 란나 특유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특히 본당(위한) 입구의 문짝에 새겨진 꽃 문양은 란나 목조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색채 사용도 독특하다. 금색과 빨간색을 주로 쓰는 중부 태국과 달리 란나 건축은 금색과 함께 청색, 녹색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북부 지역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도이수텝사원의 건물들도 이런 란나 전통 색채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일상 속 신앙, 치앙마이 사람들의 성지순례
관광객들에게는 구경거리지만, 치앙마이 사람들에게 도이수텝사원은 일상적인 신앙 공간이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현지인들이 찾아와서 참배하고 공덕을 쌓는다. 특히 불교 명절이나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수천 명의 신도들이 몰려든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도이수텝사원을 찾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축복을 받으러 오고, 결혼 전에는 좋은 인연을 기원한다. 사업을 시작할 때나 시험을 앞둔 학생들도 이곳에서 성공을 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기도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란나 신년인 송끄란(4월)과 불교 최대 명절인 위사카 부차(5월)에는 정말 장관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꽃과 향, 초를 들고 산을 오른다. 이때는 교통이 완전히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다.
케이블카 vs 계단, 두 가지 선택
현재 도이수텝사원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전통적인 방법인 306개 계단을 걸어서 오르거나, 1990년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방문객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것은 더 의미 있는 경험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나가 조각의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체력이 필요하고 시간도 더 걸린다. 특히 더운 날씨에는 꽤 힘들 수 있다.
케이블카는 편리하고 빠르다. 노약자나 어린이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순례의 의미는 좀 떨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때는 계단을 이용해서 두 가지 경험을 모두 즐긴다.
관광지화와 전통 신앙의 균형
도이수텝사원은 치앙마이 최고의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되면서 관광지화의 문제도 겪고 있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조용한 참배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큰 소리로 떠들거나 부적절한 복장으로 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원 측에서는 이를 잘 관리하고 있다. 입구에서 복장 검사를 하고, 사원 내에서의 행동 수칙을 안내한다. 또 관광 수입을 사원 보수와 지역 사회 발전에 사용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 여전히 많은 현지 신도들이 찾고 있어서 살아있는 신앙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관광객들도 이런 진정성 있는 종교 분위기를 느끼고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관광과 신앙이 상호 보완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관광
도이수텝사원이 위치한 도이수텝-푸이 국립공원은 치앙마이의 중요한 생태 보고다. 사원 주변의 산림은 치앙마이 시내의 공기 정화와 수자원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늘어나는 관광객과 개발 압력으로 환경 훼손 우려도 크다.
최근에는 환경 친화적인 관광을 위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며,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또 사원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산림 보호에 사용하고 있다.
방문객들에게도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산에서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지 말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안내한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이 아름다운 자연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도이수텝사원은 700년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불변의 신앙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전통 문화에서 멀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종교의 의미를 전달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불교 명상 체험, 전통 의식 참여, 란나 문화 교육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전통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또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국제적인 인지도 향상도 목표다.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찾고 있지만, 더욱 체계적인 문화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한다. 다국어 안내 서비스 확충, 문화 체험 프로그램 개발, 국제 불교 행사 유치 등을 계획하고 있다.
도이수텝사원에 올라가면서 느낀 건 신앙의 힘이었다. 700년 전 험한 산길을 뚫고 이런 사원을 지은 사람들의 의지와 정성이 대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정신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구름 위에서 바라본 치앙마이의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의 변함없는 신앙심이 더 아름다웠다. 306개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정상에서 느끼는 평안함도 컸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성스러운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