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처음 금각사를 봤을 때 말 그대로 숨이 멎었다. 연못에 비친 황금빛 건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됐다. 특히 아침 햇살이 금박에 반사되어 연못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순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런 게 진짜 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6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세련되기까지 했다. 주변 정원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무 하나, 돌 하나까지 모든 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교토에 와서 금각사를 안 보면 후회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쇼군의 은퇴 별장에서 시작된 꿈
금각사의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다. 하지만 건물이 워낙 황금빛이라 금각사로 더 유명하다. 이 절을 지은 사람은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였다. 1397년 그가 37세에 쇼군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하면서 지은 별장이었다.
요시미츠는 정치보다는 문화와 예술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당시 일본은 중국 명나라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는데, 요시미츠도 중국 문화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별장을 중국식과 일본식을 절묘하게 조합한 건축물로 만들고 싶어했다.
원래 이 자리에는 가마쿠라 시대의 귀족 사이온지 긴쓰네의 별장이 있었다. 요시미츠가 이를 매입해서 대대적으로 개축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공사였다. 전국에서 최고의 장인들을 불러모았고, 중국에서 귀한 재료들도 수입했다. 쇼군의 권력을 총동원한 프로젝트였다.
3층에 담긴 세 가지 건축 양식
금각사의 가장 큰 특징은 3층 건물인데 각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1층은 '호조국토'라고 하는데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침실 양식이다. 아무 장식 없이 간소하고 우아한 스타일이다. 기둥과 벽은 자연 나무색 그대로 두었다.
2층은 '조음동'이라고 부르는데 무가 양식이다. 사무라이들이 쓰던 건축 스타일로 1층보다는 조금 더 화려하다. 이 층부터 금박이 시작된다. 벽면에 금박을 입혀서 은은하게 빛난다. 창문도 1층보다 크고 시원하게 뚫려 있다.
3층은 '구경정상층'인데 완전한 중국 선종 양식이다. 중국 사원 건축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이 층이 가장 화려하다. 벽면 전체가 금박으로 덮여 있어서 햇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빛난다. 지붕 꼭대기에는 금으로 만든 봉황이 앉아 있다.
20킬로그램의 금박이 만든 기적
금각사가 이렇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건 진짜 금 때문이다. 건물 외벽에 총 20킬로그램의 금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금 시세로 계산하면 1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600년 전에는 지금보다 금이 훨씬 귀했으니까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금박을 붙이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전통 기법으로 아주 얇게 편 금박을 하나하나 손으로 붙여야 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습도가 높으면 제대로 붙지 않았다. 숙련된 장인들이 몇 달에 걸쳐서 작업했다고 한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금박을 다시 입힌다. 비바람에 벗겨지거나 색이 바래기 때문이다. 1987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을 때도 새로 금박을 입혔다. 그때 사용된 금박이 지금까지 그 찬란한 빛을 유지하고 있다.
연못에 비친 또 다른 금각사
금각사의 진짜 아름다움은 연못에 비친 모습에서 나온다. 앞에 있는 경호지라는 연못이 거대한 거울 역할을 한다. 금각사가 연못에 비치면서 실제보다 두 배로 웅장해 보인다. 특히 바람이 없는 날에는 연못 표면이 완전한 거울이 되어서 정말 환상적이다.
이 연못도 요시미츠가 직접 설계했다. 금각사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와 거리를 계산해서 연못의 크기와 위치를 정했다고 한다. 연못 안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데, 이것들도 모두 계산된 배치다. 금각사를 보는 시야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정원에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한다.
계절마다 연못에 비친 금각사의 모습이 다르다. 봄에는 벚꽃과 함께, 여름에는 푸른 나무들과 함께,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겨울에는 눈과 함께 어우러진다. 같은 건물인데도 사계절 내내 다른 느낌을 준다.
요시미츠의 죽음과 절로의 변신
1408년 요시미츠가 죽자 아들 요시모치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곳을 절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로쿠온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요시미츠의 법명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임제종 소쿠지파에 속하는 선종 사원이 되었다.
절이 된 후에도 금각사는 계속 유명했다. 교토의 명소로 알려져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 특히 에도 시대에는 여행 붐이 일면서 금각사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급증했다. 지금의 관광지 역할을 그때부터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유지비도 만만치 않았다. 금박을 다시 입히고, 건물을 보수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때로는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절의 승려들과 지역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계속 지켜나갔다.
1950년 화재와 완벽한 복원
금각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50년 7월 2일에 일어났다. 젊은 승려가 금각사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600년 역사의 건물이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렸다. 이 사건은 일본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금각사'라는 소설로 만들기도 했다.
다행히 1955년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남아있던 자료와 사진들을 바탕으로 원래 모습 그대로 재건했다. 전국에서 최고의 목수들과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전통 기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 기술도 적용했다. 특히 방화 시설을 대폭 강화했다.
1955년 완공된 새 금각사는 이전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박도 더 정교하게 입혔고, 목재도 더 좋은 것을 사용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금각사가 바로 이때 재건된 것이다. 원래 건물보다 오히려 더 완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일본 정원의 교과서
금각사를 둘러싼 정원도 일본 정원의 걸작이다. '가이유시키' 정원이라고 해서 걸어다니면서 감상하도록 설계된 정원이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살아있는 그림 속을 걷는 기분이다.
정원의 핵심은 돌과 나무의 배치다. 하나하나 모두 의미가 있고 계산된 위치에 있다. 큰 바위는 산을 상징하고, 작은 돌들은 강을 상징한다. 나무들도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계획된 배치다.
계절의 변화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 봄에는 벚나무와 철쭉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단풍이 든다. 겨울에는 소나무의 푸름이 더욱 돋보인다. 사계절 내내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정원이다.
관광객들의 성지가 된 금각사
지금 금각사는 교토 최고의 관광명소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금각사다.
가장 인기 있는 시간대는 이른 아침이다. 사람이 적고 햇살이 금각사를 비추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작가들은 새벽부터 와서 대기할 정도다. 연못에 비친 금각사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도 인기 폭발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단체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제대로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다. 조용히 감상하기 힘든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절 측에서도 관광객 수를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입장료 논란과 문화재 보호
금각사는 일본의 사원 중에서 입장료가 비싼 편이다. 어른 기준 500엔인데, 무료로 개방하는 사원들이 많은 것에 비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와 유지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금각사 측에서는 입장료로 받은 돈을 모두 문화재 보존에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기적인 금박 교체, 건물 보수, 정원 관리 등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연간 수억원의 유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 관광객 수 조절 효과도 있다. 무료로 개방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문화재 보존에도 좋지 않고 관람 환경도 더 나빠질 수 있다. 적정한 입장료는 필요하다는 게 절 측의 입장이다.
미시마 유키오와 문학 속 금각사
금각사는 문학 작품의 소재로도 유명하다. 특히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작이다. 1950년 금각사 방화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과 파괴 충동을 깊이 있게 다뤘다.
소설 속에서 금각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절대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은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면서도 동시에 파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결국 불을 지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복잡한 인간 심리를 금각사를 통해 표현한 걸작이다.
이 소설 덕분에 금각사는 더욱 유명해졌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리며 금각사를 찾는다. 아름다움과 파괴, 영원과 찰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교토의 상징에서 일본의 대표로
금각사는 이제 교토를 넘어서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일본 관광청 홍보자료에는 거의 필수로 등장한다. 외국인들이 일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1순위가 후지산이라면 2순위는 금각사일 것이다.
특히 아시아 관광객들에게는 절대적인 인기다. 한국, 중국, 대만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거의 모두 금각사를 방문한다. SNS에 금각사 사진을 올리는 게 일종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일본 여행을 증명하는 사진 같은 역할을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고도 교토의 문화재' 중 하나로 1994년에 지정되었다. 이제 금각사는 일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금각사를 보면서 느낀 건 진정한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600년 전 한 쇼군의 꿈으로 시작된 건물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화재로 한 번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금각사의 황금빛 찬란함은 단순히 금박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염원과 정성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가서 계절이 바뀐 금각사의 모습을 보고 싶다.